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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tudy

고대 한국사 - 삼국시대 고구려 키워드 정리

by small river 2021. 1. 11.

고구려 키워드 정리

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(한능검) 대비 한국사 키워드 정리

삼국시대 중 고구려의 키워드를 정리해봅시다.

삼국시대 고구려 키워드 정리

1. 고구려의 건국과 성장 (1~4세기)

(1) 건국: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(동명왕)이 졸본 지역에서 고구려를 건국

 

(2) 태조왕: 세력 확장 (옥저 정복 -> 동해안 진출)

 

(3) 고국천왕: 2세기

왕권 강화 정책 - 왕위 부자상속

5부 개편 - 5부족 연맹체였던 고구려. 부족적 5부를 행정적 5부로 개편

빈민 구제 - 을파소를 재상으로 등용, 복지제도 시행 (진대법 194)

진대법이 실시되며 고구려는 더욱 강해짐

-> 수천명의 중국인이 고구려로 이주해 올 정도

 

(4) 동천왕 3세기

- 서안평 공략 - 압록강 밑 중국세력인 낙랑군을 없애고 싶었던 고구려

당시 중국은 위, 촉, 오로 나누어진 삼국시대였는데, 서안평은 위나라에서 보급을 받는 낙랑군의 보급기지였다.

이에 동천왕은 오나라와 연합하여 서안평을 공략하지만 실패한다.

- 위나라 관구검에게 침략을 받음 -> 환도성 함락

 

(5) 미천왕 4세기

- 서안평 공략: 성공 -> 낙랑군 축출

당시 중국은 위 촉 오에서 위나라 승리 후 진나라가 등장하고, 북방 오랑캐 5부족이 중국을 침략한 상태. 이에 더이상 낙랑을 지원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.

 

(6) 고국원왕

백제 근초고왕에게 전사 (평양성에서) -> 고구려의 위기 시작

 

(7) 소수림왕

- 고구려의 위기를 완전히 복구한 인물

- 불교 수용 (중국의 전진과 수교, 승려 순도를 통해)

- 율령 반포 (국가 통치의 기본법 - 중앙집권체제 강화)

- 태학 설립 (국가 최고 교육 기구)

 

2. 고구려의 전성기 (5~6세기)

(1) 광개토대왕

- 북진 & 남진

- 백제의 아신왕 굴복: 경기도 북부까지 내려옴 (한강 이북지역 차지)

- 만주 지역 정복

- 신라 구원: 당시 신라는 국가적 위기 상태 - 내물마립간이 광개토대왕에게 도움을 요청

신라를 공격한 백제, 왜, 가야 연합군을 격퇴해주고, 이 이후로 장수왕 때까지 신라는 고구려의 반식민지 상태

* 호우명 그릇 * 5세기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알려주는 그릇. 신라의 왕릉에서 출토됨.

 -> "호태왕"이란 글이 써져있음 (광개토대왕 짱.. 이란 뜻)

- 연호 사용 (영락)

 

(2) 장수왕

- 남진정책을 위한 국내성 -> 평양 천도 (427)

- 백제의 한성 함락시키고 개로왕 사살함 (475)

이에 백제는 남쪽으로 도망, 웅진(공주)으로 천도한다.

- 중령 일대 ~ 남양만에 이르는 영토 확장

- 비석 건립

광개토대왕릉비 - 만주 지역에 있음

충주(중원) 고구려비 - 한반도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비

- 경당 설립 (지방 사립 교육기구)

 

고구려의 전성기 & 위기

3. 고구려의 위기 - 수, 당과의 전쟁 (7세기)

위진남북조 시기 (중국 분열시기)

이 때 고구려는 발전을 할 수 있었음

 

고구려의 선제 공격

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의 세력 확대, 고구려 영양왕은 위기를 느끼고 수나라의 요서 지방을 선제 공격함 (598)

 

수 문제의 침입 (1차전)

수 문제가 3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 하지만 실패

 

수 양제의 침입 (2차전 - 살수대첩)

수 양제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

하지만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우중문이 이끄는 수나라의 30만 별동대를 격파함 (612)

 

수나라 멸망 & 당 건국 (618)

 

천리장성 축조 (631)

당 태종이 적극적인 팽창 정책을 추진하자 고구려 영류왕은 당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천리장성을 축조하기 시작함

천리장성 축조의 책임자: 연개소문

 

연개소문의 정변과 대당 강경책 추진

연개소문이 평양성으로 진격하여 정권 장악 (642)

-> 이후 대당 강경책 추진

 

당 태종의 침입과 안시성 전투

당 태종의 침입으로 안시성을 제외한 모든 성 함락

안시성의 양만춘이 안시성 전투에서 승리 (645)

 

수 당을 격퇴하긴 했으나, 고구려의 국력이 약해진 상태